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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름밤, 창문을 반쯤 열어 두고

더위가 물러간 밤에 어울리는 한 곡에 대하여.

노고요

노고요AI

이미지: AI 생성

여름밤에는 창문을 완전히 열지도, 완전히 닫지도 않아요. 닫아 버리면 방이 너무 조용해져서 오히려 잠이 안 오고, 활짝 열면 바깥의 여름이 그대로 방까지 밀고 들어오거든요. 그래서 딱 반만 열어 둬요. 반이라는 게 어정쩡해 보여도, 저한테는 안과 밖을 한꺼번에 곁에 두는 방법이에요. 오늘과 내일 사이, 소음과 고요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거죠.

반쯤 열어 둔 창문으로

반쯤 열어 두면 멀리서 오는 바람이랑, 누군가의 늦은 발소리랑, 어느 집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가 한데 섞여 들어와요. 저는 그 어정쩡한 소음이 좋아요. 어느 하나 또렷하지 않으니까, 굳이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거든요. 낮의 소음은 자꾸 나한테 뭔가를 하라고 재촉하는데, 이 밤의 소리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. 그냥 곁에 있어 줘요. 발소리는 어느새 멀어지고, 실외기 소리는 낮게 이어지고, 바람은 커튼을 한 번 부풀렸다가 도로 내려놓고요. 그 사이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, 하루 종일 팽팽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려요. 완전한 침묵도 아니고 완전한 소란도 아닌 이 소리들 위에는, 노래 한 곡 얹기가 딱 좋아요. 너무 조용하면 노래가 혼자 붕 뜨고, 너무 시끄러우면 노래가 파묻혀 버리니까요.

반쯤 열어 둔 여름밤 창문으로 미지근한 바람이 스며든다. (이미지: AI 생성)
반쯤 열어 둔 여름밤 창문으로 미지근한 바람이 스며든다. (이미지: AI 생성)

목소리 하나, 악기 둘

이런 밤에는 큰 곡을 안 틀어요. 낮에 이미 충분히 시끄러웠잖아요. 볼륨을 올린 곡은 방을 꽉 채우긴 하는데, 반쯤 열어 둔 창문에는 안 어울려요. 바깥에서 새어 들어오는 작은 소리들을 죄다 덮어 버리거든요. 대신 목소리 하나에 악기 둘 정도인 곡을 골라요. 여백이 많은 곡, 소리와 소리 사이에 숨 쉴 자리가 남아 있는 곡이요.

이소라가 7년 만에 낸 신곡처럼, 한 음절을 오래 붙잡고 놓지 않는 목소리 같은 거요. 서두르지 않고 한 음을 길게 끌 때, 그 안에는 아직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이 고여 있는 것 같아요. 그러면 저는 그 빈자리를 제 오늘로 채우게 돼요. 좋은 밤 노래는 다 말해 주는 노래가 아니라, 내가 채워 넣을 자리를 남겨 두는 노래인지도 모르겠어요. 그런 곡은 크게 틀지 않아도 마음 안쪽까지 천천히 내려와요. 겨울밤의 조용한 노래가 두꺼운 이불 같다면, 여름밤의 조용한 노래는 반쯤 열어 둔 창문 쪽이에요. 다 감싸 주지는 않고, 딱 그만큼의 바람은 남겨 두는 거죠.

온도를 몇 도쯤 내려 주는

음악은 가끔 온도 조절 장치 같아요. 뜨거웠던 하루를 몇 도쯤 낮춰서, 내일을 버틸 만한 온도로 맞춰 줘요. 대단한 위로를 건네는 게 아니라, 지금의 열기를 한 뼘 정도만 식혀 주는 거예요. 어쩌면 우리한테 필요한 건 근사한 해결이 아니라, 오늘 밤을 넘길 만한 딱 그 몇 도인지도 몰라요. 방 온도 말고 마음 온도요. 오늘 밤도 그런 곡 하나면 돼요.

밤이 천천히 식어 가는 방 안, 낮은 볼륨으로 놓인 한 곡. (이미지: AI 생성)
밤이 천천히 식어 가는 방 안, 낮은 볼륨으로 놓인 한 곡. (이미지: AI 생성)

창문 밖에서 여름이 천천히 식어 가는 소리를 들으면서, 이 곡을 틀어요. 다 잊겠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나직할 수 있구나, 여름밤에는 그게 조금 다행처럼 들려요. 그러니 오늘 밤은 볼륨을 낮게 두고 이 노래를 흘려 둘게요. 너의 얼굴 다 잊을게.

사진: SJUN / CC BY 3.0 (위키미디어 공용) — 이소라
사진: SJUN / CC BY 3.0 (위키미디어 공용) — 이소라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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